연구개발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공계 연구자의 길을 선택했고, AI는 이런 선택을 든든히 받쳐주는 도구이자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마인드로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Data Intelligence Lab 조혜승님을 만났습니다.
오디오 신호에 빠지다
혜승님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 공부만으로는 사회에 나오기에 부족함을 느꼈던 그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습니다. 그가 첫 연구 분야로 삼은 것은 오디오 신호처리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교 축제를 준비하면서 음원을 편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오디오 신호가 생긴 모습을 처음 봤어요. 파동으로 된 신호를 보면서 편집했는데 단순한 과정이었지만 참 재미있었어요. 대학에 온 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신호처리 수업에서 음성인식 프로젝트를 했는데, 다시 신호를 보니 반가웠어요. 전자공학에서 주로 다루는 반도체나 RF 신호를 연구하는 것보다 우리 생활에 보다 밀접한 음악이나 영상 같은 멀티미디어 신호가 더 흥미로워서 오디오 신호처리를 연구하게 됐어요.”
오디오 신호 연구자로서 혜승님은 2015년 세계적 권위의 음성신호처리 국제 학회 ‘Interspeech’에 발표자로 참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처음 ‘딥러닝’을 만났습니다.
“학부 때 음성신호 처리에 머신러닝을 적용한 적은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딥러닝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현장에서 친해진 한국인 연구자에게 ‘딥러닝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미 많은 논문들이 딥러닝을 다루고 있었고, 이것이 신호처리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보였어요.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학회를 다녀온 뒤 딥러닝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혜승님이 AI 중에서도 Data Intelligence 연구를 하게 된 것은 LG AI연구원에 입사하고 난 뒤입니다. 오디오 신호와 Data Intelligence 분야의 데이터들은 응용 분야만 다를 뿐 시계열 데이터를 다룬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LG AI연구원에 합류하고 나서 초반에 파일럿 프로젝트로 화학 합성물 공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기 고장을 예측하는 연구를 한 적이 있어요. 화학 공정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초반엔 접근하기도 어려웠고 반신반의하면서 시작했는데 실제로 제가 출력했던 결과가 기기의 이상을 조기에 감지하는 것을 보고 AI에서 가능성을 발견했고 연구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됐어요.”
“데이터 인텔리전스 연구자는 내과 의사 같아요”
혜승님은 현재 Data Intelligence Lab에서 ESS(Energy Storage System)에 들어가는 배터리 이상 감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배터리 연구는 LG AI연구원에서 진행하는 연구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연구에 속합니다.
“이상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검출하고 예지해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 문제의 범위를 정하거나 종류를 파악하기도 어려워요. 특히 배터리는 직접 수거해서 분해해보지 않는 이상 문제 여부를 파악하기조차 힘든데, 배터리에서 나오는 전류, 전압, 온도만으로 배터리의 이상 여부를 알아내야 하죠. 이런 점에서 저는 가끔 저희가 하는 일이 내과 의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의사들이 사람의 생체신호와 반응을 분석해서 병명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과 유사하거든요.” 
실제 AI 연구자들이 필드에서 접하게 되는 데이터들은 학교에서 사용해온 퍼블릭 데이터들과 달리 정제가 되어 있지 않아 처음엔 접근조차 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혜승님은 여기에 주눅 들지 않고 일단 뛰어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데이터라도 동료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매달리면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Data Intelligence 연구는 비전, 언어를 제외한 모든 데이터를 다룬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만큼 범위도 넓고 풀어야 할 문제도 많은 거죠. 배터리나 화학 공장의 제조 공정에서, IPTV의 네트워크에서, 금융 시스템 속에서도 보이지 않은 신호들이 쌓여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풀어야 할 문제들의 범위가 다양하다는 것이 참 매력적이에요. 연구 과제 대부분이 난제 중에서도 최고 난이도의 난제들이지만, 모두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이를 해결했을 때 세상에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것도 좋고요.”
혜승님은 다양한 제조 관련 데이터를 다룰 수 있다는 점, 실제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경험, 수평적인 분위기와 연구의 자유도가 높다는 점을 LG AI연구원의 장점으로 꼽았습니다. 풀어야 할 난제가 많기 때문에 이 난제를 해결한다면 그 과정에서의 경험이 연구자에겐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자산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입니다.
“만약 LG AI연구원이 특정 기업이나 사업 부서에 속해 있다면 관련 논문을 찾아서 읽을 새도 없이 기한 내에 결과물을 내는 것에 매달려야 했을 거예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원론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가 있는데, LG AI연구원에선 연구자들이 충분히 이를 연구하고 스스로 질문하면서 과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줘요. 저희 연구원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랩장님 또한 구성원들이 과제에 함몰되지 않고 넓은 관점에서 문제를 보기를 원하시고요.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면 이를 여러 가지 응용 분야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이것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이상적인 환경이고, 연구자라면 누구나 이런 연구 환경에서 연구하길 원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AI는 가능성이 무한한 어린아이
AI 연구 4년 차에 접어든 혜승님에게도 데이터가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한 가지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푹 빠지는 자신의 성향을 알기 때문에 일부러 한 발짝 떨어져서 문제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산책을 하거나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일부러 수면 위로 띄워 여러 사람과 대화를 해봐요. 저와 성향이 다르거나 다른 분야 연구를 하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문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거든요. 가끔 이홍락 CSAI께 과제를 보여드리고 조언을 구하기도 해요. 같이 한숨을 쉴 때도 있지만, 이조차도 도움이 되는 게 ‘이 과제가 나한테만 어려운 게 아니었구나, 저분께도 어려우면 나는 당연히 못 풀지’ 이렇게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고요. (웃음)”
이 과정에서 구체적인 조언은 물론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들의 모습은 혜승님의 인상에 깊이 남았습니다. 이들을 보며 혜승님 역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자’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팀이 갖춰야 할 조건 중에 하나가 구성원이 팀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조직 안에서 심리적 안전을 느끼지 못하면 반대 의견이 있어도 쉽게 개진할 수 없고, 이런 조직은 쉽게 도태된다는 거죠. 제가 Data Intelligence Lab에선 아직 연차가 적은 편에 속하지만, 저희는 굉장히 격의 없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누구나 반대 의견도 제시할 수 있어요. 임우형 랩장님이 이런 안전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시거든요. 랩장님은 연구자로서도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시고, 핵심을 빠르게 짚어내세요. 연구자로서, 리더로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처음엔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던 AI도 막상 연구에 뛰어들고 보니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데이터를 정제해서 하나하나 넣어주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과정이 아이에게 정성껏 이유식을 만들어 떠먹이고,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그것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연구자들의 손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자라고 있는 AI, 이 AI를 키우며 혜승님도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하는 이상 감지 영역에서 충분한 역량을 쌓고 싶어요. LG 안에서 이상 감지 문제가 생기면 누구나 저를 찾게 하는 것이 단기적인 목표고요. 이 분야에서 ‘이 정도면 됐어’라고 저 스스로 만족할 수 있게 되면, 점차 다른 분야로 경험치를 넓혀서 데이터의 특성에 상관없이 근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래서 먼 미래에는 저 역시 넓은 시각으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