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창욱님의 배우고, 나누고, 성장하는 삶

LG AI연구원의 전창욱님은 연구원 밖에서 더 유명합니다. 이곳에 합류하기 전부터 ‘모두의연구소’에서 DeepNLP랩을 이끌었고, 자연어 처리에 관한 책을 출간했으며, 왕성한 강연과 SNS 활동을 통해 AI 연구원들에게 지식과 정보를 아낌없이 나눠왔습니다.


평범한 개발자에서 AI 연구원들의 멘토로

LG AI연구원에 입사한 뒤에도 그의 지식 나눔 활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 계열사 임직원들을 모아 딥러닝 스터디 모임을 진행하는 한편 함께 일하는 태스크 구성원들과도 매주 두 번 최신 자연어 처리 동향과 기술을 공유하는 스터디 모임을 갖습니다. 여느 연구원들처럼 일상적인 연구와 회의는 기본, 짬이 날 때마다 독자들의 문의에 응대하고 페이스북 자연어 처리 커뮤니티에 최신 AI 논문과 정보를 정리해서 올립니다.

“저는 원래 AI 연구원이 아니라 서버와 앱을 개발하는 개발자였어요. 5~6년 전까지만 해도 ‘딥러닝’에 대해 전혀 몰랐죠. 다른 분야의 기술을 배우고 싶어 이곳저곳 기웃대다가 2015년 구글 핵페어(Google HackFair)에서 대학원생들이 CNN 기술을 활용해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딥러닝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개발 업무를 하면서 공수가 지나치게 많이 들거나 기술 구현이 힘들어 자주 한계에 부딪혔던 그에게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딥러닝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이후 그는 딥러닝을 향한 즐겁고도 고단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딥러닝을 알려주는 곳이 제대로 없었어요. 학교도 마찬가지였고요. 퇴근 후 개인들이 모여 만든 스터디 그룹을 찾아 함께 공부하고, 딥러닝에 관련된 콘퍼런스가 있다고 하면 무조건 달려갔어요. 그러면서 ‘모두의연구소’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죠.”

새벽에 일어나 발제를 준비하고 틈만 나면 논문을 찾아 읽고 점심시간엔 딥러닝에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스스로 찾아간 딥러닝 스터디 그룹엔 자신처럼 배움에 갈급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공부한 지 1년 만인 2016년, 딥러닝 기술이 들어간 ‘스마트 미러’를 만들어 구글 핵페어에 참여했습니다. 이듬해엔 영유아의 두상을 AI로 측정해 이상 여부를 파악하는 앱으로 창업경진대회에서 혁신상을 받았고, 2018년엔 AI로 다음 단어들을 예측하는 ‘장애인을 위한 키보드’를 만들어 국어 정보 처리 시스템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받으며 차곡차곡 작은 성취를 쌓았습니다.

“그전에는 퇴근하면 가족들과 놀고, 게임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어요. 책도 아예 안 읽었고요. 그런데 항상 불안했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기술로 언제까지 생산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죠. 딥러닝을 배우고 이 기술을 통해 새로운 일들을 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이런 불안감이 사라졌어요. 뭔가 작은 일이라도 안 해본 것들을 하나씩 성공하다 보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집단지성과 연결의 힘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개발자가 자연어 처리와 관련된 책을 쓴 것 또한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AI 분야에 처음 뛰어드는 사람들의 막막함을 이해할 수 있었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얻은 지식인 만큼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여러 IT 출판사에 문의했는데 반응이 그다지 탐탁지 않았어요. 답답하던 차에 폭우가 쏟아지던 일요일 아침, 한 출판사 대표님이 판교창업지원센터로 찾아오셨어요. 파주에서 대중교통으로 오셔서 옷과 구두가 흠뻑 젖어있었죠. 대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게 책을 쓰겠다고 100명이 찾아와도 실제로 책을 쓰는 사람은 3%뿐입니다. 저는 창욱 님이 3%가 될지, 나머지 97%가 될지 궁금합니다.’ 그날부터 2년 동안 주말마다 9살 아들과 함께 판교창업지원센터에 갔어요.”

전창욱님이 집필을 주도한 「텐서플로와 머신러닝으로 시작하는 자연어 처리」. 기술 변화를 반영해 개정판까지 냈다.


8명이 함께 쓰기 시작한 책은 마지막에 4명의 공저자만 남았습니다. 매주 주말 오전에 모여 1시간씩 각자가 맡은 부분에 대해 리뷰하고, 미처 쓰지 못한 부분은 끝까지 남아서 완성해야 한다는 엄격한 룰을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성된 책 「텐서플로와 머신러닝으로 시작하는 자연어 처리」는 중쇄와 개정판까지 찍으며 그의 이름을 업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4명의 공저자 중 창욱님을 포함한 3명은 집필 당시 자연어 처리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지만, 출간 후 모두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낫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말하는 ‘여럿’은 그냥 다수가 아니라 나와 생각과 의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말해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최대의 성과를 거둘 수 있거든요. 어떤 목표가 있을 때 그 성취가 간절한 사람, 그리고 그런 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고, 계속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편이에요.”

LG AI연구원에서 창욱님은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한 언어 모델 개발과 MRC/QA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그는 LG화학과 함께 구글의 Bert로 바이오 분야의 데이터를 학습해 특허와 논문 등에서 주요 키워드를 빠르고 정확하게 추출하는 AI 모델을 만들었고, 이것이 AI 전문가 육성을 통한 현장 문제 해결 사례로 선정되어 LG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또 직접 개발한 MRC 모델로 KorQuAD 1.0 경연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델을 LG 계열사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API 플랫폼으로 만들어 올해 LG전자, LG CNS, LG유플러스에 기술을 이전했습니다.

”LG AI연구원은 대기업이지만 스타트업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요. 목표만 주어지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은 각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죠. 구성원들 또한 목표 지향적이고 주도적인 사람들이 많고 리더들도 통제하기보다는 마음껏 해보라고 믿고 맡겨주는 편이에요. 이런 점들이 우리 연구원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 

창욱님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다독가입니다. 2주에 한 권 읽는 독서 습관을 10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에게 책은 목표가 흔들리고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삶의 방향성을 바로잡아주는 멘토입니다. 



“예전 회사에서 주말도 없이 일만 하던 때가 있었어요.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는데 옆에 있던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었고 그때부터 책을 읽게 됐어요. 방대한 스케일의 지식을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내가 현실에서 직면한 어려움이 작게 느껴져요. 책을 통해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이 쌓이면 삶의 방향성이 좀 더 명확해지고 나와 맞는 방법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아들에게 돈이 아닌 좋은 책을 유산으로 남겨주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책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합니다. AI 연구자들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에 주저 없이 몇 권의 책을 꼽습니다.

“AI와 관련해서는 「마스터 알고리즘」과 「수학의 아름다움」 두 권을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마스터 알고리즘」은 AI의 여러 학파에 대한 히스토리부터 발전 현황, 지향점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에요. 「수학의 아름다움」의 저자 우쥔은 구글 검색 엔진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데 왜 검색 엔진에 수학적 알고리즘이 필요한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요. 자연어 처리에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거예요. 이 밖에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AI와 관련 없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창욱님의 추천 도서. 「마스터 알고리즘」과 「수학의 아름다움」은 AI 연구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 꼽았다.



창욱님은 해마다 새로운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을 즐깁니다. 올해 LG AI연구원에서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글로벌 언어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AI 연구 초기에는 무언가를 만들어서 공모전이나 경연 대회에 나가서 인정받으면서 희열을 느꼈다면 그다음에는 책을 출간하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문서 독해 모델(KorQuAD)을 만들어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1등을 차지해서 희열을 느꼈어요. 국내에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으니, 이젠 해외로 나가는 게 저의 목표예요. 그동안 우리가 한 번도 겨뤄보지 못했던 무수한 글로벌 AI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언어 모델을 만들고 싶어요.” 
 


그의 SNS 프로필에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살아간다’는 좌우명이 적혀 있습니다. 딥러닝을 적용해서 공모전에 출품했던 혁신 제품부터 힘들게 습득한 지식을 외부와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커뮤니티 운영, 강연, 도서 집필까지 지금까지 그가 해온 모든 활동은 이 좌우명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지금까지 큰 흐름을 주도해 온 기업은 ‘구글’이에요. 몇 년마다 한 번씩 논문과 기술을 발표하며 자연어 처리의 핵심적인 알고리즘을 만들어왔거든요. 구글처럼 자연어 처리의 큰 흐름, 패러다임을 바꾸는 알고리즘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까지 저는 제가 해보지 않은 것들에 도전해왔어요. 외부의 칭찬보다 제가 두려움 없이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딥러닝은 지금도 발전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에 맞춰 새로운 기술에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 연구하는 연구자가 되고 싶습니다.”